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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혁명

기사승인 2018.03.24  17:5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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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단상] 박진호 담임목사(신언교회)

매일 마다 들려오는 부정부패와 미투 고백이 대체 어디까지 일까? 이 다음에는 또 누구일까? 라는 기대아닌 탄식으로 뉴스 앞에 귀를 기울이기가 두렵다. 방송을 트는 곳마다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논하는 방송으로 가득하다.
부정과 부패의 문제가 어느 국가나 사회를 막론하고 중대한 문제로 클로즈 엎 되는 것은 아마도 그 나라의 흥망성쇠가 바로 이 문제에 달려있으며 동시에 개인이나 민족의 장래까지도 좌우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 문제는 참으로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얼핏 생각하면 이 문제는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 같으면서도 실상은 너무나 큰 이해관계가 있는 중대 문제이다. 그래서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바로 나의문제요, 너의 문제라는 깊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대해야 할 것이다.
언제나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부정부패는 윤리와 도덕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볼수 있다.
다시 말해서,인간들의 행위의 선악이나 정사를 판가름 할 수 있는 원리나 도의가 없는데서 부정과 부패는 싹트게 되고 또한 자라게 되는 것이다. 기본 윤리나 도덕이 논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했으니까 나도 한다”는 논리가 죄의식에서 자유하게 해서 그것이 정당한 것으로 착각하게 한다.
따라서 윤리와 도덕의 부재는 무원칙과 임기 웅변적인,그리고 찰나적인 삶을 낳게 하므로 인간생활의 질서를 파괴하며 동시에 사회 현상은 혼돈의 극에 도달하게 된다.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영성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자신마저 가누지 못하는 상태까지 나타냄은 실로 통탄 할 수 밖에 없다.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 칭함은 바로 인간에게는 영성과 양심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세상의 모든 일에 대해 판단하고 행동 할 수 있는 시금석인 양심이라는 식별력이 있어서 특별한 논리를 가지고 있지 않아도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현대사회에 몸을 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특별한 원리나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행하는 것이 곧 원리이고 맞는 것이 바로 올바른 삶의 기준이라 인정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원리니 기준을 무시하는 것 자체가 이웃과 사회에 대해서 크나큰 죄악임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사실에 아무런 양심적인 반응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저들의 대부분은 그 같은 생활을 잘못으로 인정하기는 커녕 오히려 현대사회에서는 무원칙한 생활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야 성공할 수 있다는 무서운 사상을 원리로 심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편이다. 결과적으로 이웃이나 사회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는 모순된 생활관이 판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뿐이다.
이제는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이야기는 하나의 명제로서이지 실제 생활에서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모든 사람의 생활이 “너”없는 “나”의 생활을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그 같은 삶만을 추구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사회에서 어찌 양심을 논할 수 있으며 윤리와 도덕 문제를 논할 수 있겠는가?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아의 말과 같이 “만물보다 더 부패한 것은 인간의 마음이라” 할 수 밖에 없는극한 상황에 이른 것 같다. 그것은 부정부패의 원인이 인간의 마음 즉,양심의 부패에 있기 때문이다.
이로서 부정부패는 인간의 마음의 부패요 인간의 마음의 부패는 곧 윤리와 도덕의 부패를 낳게하는 근본 요인임을 발견케 된다.
그러므로 정치,경제,문화를 논하기 전에 양심으로 돌아가는 운동을 전개해야 하겠고 기능 교육을 하기 이전에 전인 교육으로 상실한 마음을 되찾는 운동에 앞장서야 하겠다.
인간사회의 제반 문제는 언제나 인간의 마음과 직결 되어 있으며 이와 같은 온갖 문제의 해결의 열쇠는 마음의 변혁여하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룻소도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갈파했고 키엘케골도 “위대함에 이른다는 것은 이런 사람,저런 사람이 되는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고 하였다.
이런 의미로 볼 때 아테네의 시민들을 향해‘너 자신을 알라’고 외쳤던 소크라테스의 말은 현대인들이 다시한번 깊이 음미하여 볼 엄숙한 명제로 느끼게 한다.
그는 아테네 시민들이 돈과 쾌락과 권력과 명예의 부정한 추구에만 골몰하는 부패 타락한 현상을 개탄하였으니 오늘 우리가 당면한 현실과 다름이 무엇인가?
그러므로 현대가 당면한 중대한 문제 해결의 첩경은 새 윤리와 도덕의 재건에 있다. 그 방법은 오직 한 길 인간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창조주가 창조주가 인간을 만드시고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던 그 상태, 그 창조주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것은 곧 인간의 마음에 혁명이 단행 되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shnews j5900@chol.com

<저작권자 © 시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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