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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시흥시 옛마을 이름을 찾아서】

기사승인 2023.03.10  11:3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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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군 관내도 「시흥군세일람(1936년)」.

옛 시흥군의 소래면, 군자면, 수암면이 합쳐져 1989년 1월 시로 승격할 당시 인구 9만3천여 명의 시흥시는 이후 급성장하며 2023년 1월 말 현재 인구 57만1천여 명에 이르렀다.

개발 과정에서 옛 자연마을의 상당수가 도시화로 사라졌고 정겨운 예전 마을지명도 점차 잊혀져 갔다. 이에 시흥신문은 시흥문화원이 발간한 「시흥시 지명유래」를 참고, 시흥지역의 옛마을이름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 계수동

조선시대에는 인천부 황등천면의 오리, 육리, 칠리였다가, 1914년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인천부 일부와 부평군이 합쳐져 부천군이 신설되면서 신현면, 전반면, 황등천면이 소래면으로 통합되자 부천군 소래면 계수리가 되었다. 시흥군이 시흥시로 승격되면서 시흥시 계수동이 되었다. 행정동은 대야동에 속한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년 경)의 인천부 황등천면에 속한 5리 계일(桂日), 6리 수로곡(壽老谷), 구미(九美), 가일(佳日), 건지정(乾井里, 건쥬물), 고공리(古孔里), 7리 내곡(內谷, 안골), 후곡(後谷, 뒷골), 덕석곡(德石谷, 덕셕골) 등이 계수동에 해당하는 마을이다. 계수동은 이 가운데 계일의 ‘계’와 수로곡의 ‘수’를 따서 지은 지명이다.

= 가골(佳谷)

대야동에서 부천으로 넘어가는 여우고개 정상부근 음식점이 많은 곳으로 수로골 북쪽에 자리잡은 마을이다. 본래 덕수 이씨 선산지로 조선시대에는 호랑이, 늑대, 여우 등이 많아 인근 사람들이 가기를 꺼려하는 오지였다고 한다. 가골에 마을이 형성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 황해도, 옹진, 벽성 등지의 피난민이 정착한 이후이다.

= 가일(佳日)

사시사철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곳에 자리잡은 살기 좋은 마을이라 하여 ‘가일’이라 불렸다. 경주 이씨와 전주 이씨가 오래 살아온 마을로 동쪽을 ‘큰가일’, 서쪽을 ‘작은 가일’이라 불렀다.

= 건지물(乾支井)

이곳은 창원 황씨가 많이 살고 있어 ‘황촌말’이라 부를 정도로 창원 황씨가 대성을 이뤘다. ㅣ외에도 전주 이씨와 김해 김씨 등이 세거해 왔다. ‘건지물’은 땅이 건조하고 물이 귀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고갱이(高孔里‧高佳里)

조선시대에는 고공리로 불리던 마을로 조선 중엽 이순이라는 인물이 처음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 예전에는 건지물에 속했는데 마을이 분리되면서 건지물은 ‘건지동’, 고갱이는 ‘고강동’이라 부르기도 한다. 건지물 북쪽에 위치한다.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shnews j5900@chol.com

<저작권자 © 시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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