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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시흥시 옛마을 이름을 찾아서】

기사승인 2023.05.19  10:3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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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군 관내도 「시흥군세일람(1936년)」.

옛 시흥군의 소래면, 군자면, 수암면이 합쳐져 1989년 1월 시로 승격할 당시 인구 9만3천여 명의 시흥시는 이후 급성장하며 2023년 1월 말 현재 인구 57만1천여 명에 이르렀다.

개발 과정에서 옛 자연마을의 상당수가 도시화로 사라졌고 정겨운 예전 마을지명도 점차 잊혀져 갔다. 이에 시흥신문은 시흥문화원이 발간한 「시흥시 지명유래」를 참고, 시흥지역의 옛마을이름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 신천동(新川洞)

신천동은 시흥시 중심부에서 북서쪽에 위치하며 은행동‧정왕동‧연성동 등에 대규모 택지개발이 진행되기 전까지 주거‧상업‧행정‧문화‧교통의 중심지였다. 신천동은 조선시대 인천부 신현면의 신촌리(新村里)와 사천리(蛇川里)였는데, ‘신천’은 ‘신촌리’의 ‘신’자와 ‘사천리’의 ‘천’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1914년 4월 부천군 소래면 신천리였다가 1973년 7월 1일 소래면이 시흥군에 편입되면서 시흥군 소래면 신천리가 되었고, 법률 제4050호에 의해 1989년 1월 1일 시흥군의 소래읍‧수암면‧군자면이 합쳐져 시흥군이 시흥시로 승격되자, 시흥시 신천동이 되었다.

= 용해(龍海)부리

인천시 운연동 음실마을과 경계를 이룬 마을로 조선시대 때 강도와 도둑들이 들끓어 마을이 없어졌다가 일제강점기에 다시 마을이 형성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아주 먼 옛날 바다에서 올라오던 용이 이 마을에 왔다가 소래산 호랑이(풍수지리상 소래산이 호랑이 혈 또는 코끼리 혈이라고 함)가 으르렁대자 물러서다가 용 꼬리만 남게 되었다고 해서 이후로 ‘용해부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는 이곳이 풍수로 보아 용혈이고, 소래산은 호랑이 혈인데서 나온 말로 풀이된다. 또한 어떤 이들은 소래산은 용의 머리이고 마을은 용의 꼬리에 해당된다고도 한다.

이 마을을 ‘미넘어’라고도 칭하는데, 이는 마을 너머(서쪽)에 조선시대 지중추부사를 지낸 이여발(李汝發, 1621~1683)의 묘가 있기 때문이다.

= 강치정다리

명진마을 앞(남쪽)에 있는 다리로 으슥하고 후미진 곳이어서 밀도살이 성행하였을 뿐 아니라 도둑들이 들끓었다고 한다. 수인산업도로 공사 과정에서 다리는 사라지고 토관만 묻었다.

= 넙적바위

일제때 소래초등학교 학생들이 야외실습장으로 이용했던 바위로 내원사 옆에 있었으나 1987년 정수장 건설로 없어졌다.

= 새말다리

삼미시장에서 신천동사무소 건너오는 길에 있는 다리로 연혁은 정확하지 않으나 새말주민들은 그 다리를 ‘새말다리’라고 불렀다.

= 세집매우물

세집매 가운데 있던 우물로 바위 틈에서 샘이 솟는데, 물맛이 좋아 마을공동우물로 사용되었지만 1987년 신천지구 토지구획정리 때메워졌다.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shnews j5900@chol.com

<저작권자 © 시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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