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요단상)박혜성-경기과학기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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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추석이 되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설레임이 남아 있는 건 왜죠? 그때에도 별 다르게 특별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추석이 다가오니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났고 엄마를 생각하니 어렸을 적 엄마가 해주셨던 추석빔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꼭 쫄쫄이 털바지를 사주셨습니다. 아마도 겨울이 다가오고 가격이 저렴해서였을텐데…. 그때는 그 바지가 또 그렇게 싫었습니다. 아직도 사진속에서 동생과 나는 쫄쫄이 바지를 입고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네요. 그맘때쯤 먹을 수 있던 청사과… 지금에야 그 사과종이 아오리라는 걸 알았어요.
우연히 스쳐지나가며 보게 됐는데 밤송이들도 꽤 커져 있더라구요. 그 밤송이를 따서 알맹이를 확인할 것도 아니면서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밤송이를 까고 있는 모습이 연상됩니다.
아~ 그리고 가을이면 저의 숙명과도 같은 감도 익어가죠. 빨갛게 익은 홍시는 또 얼마나 따먹어 보고 싶은 충동을 불러 일으키는지….
작년 추석부터 기독교 집안인 시댁 덕에 제사를 안 지내는 동생네와 시어른들이 다 돌아가셔서 먼 시댁에 내려갈 필요가 없어진 저희와 혼자인 남동생과 아빠를 모시고 명절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첫 여행은 지리산 주변을 돌아봤었고, 마지막 날 아침에 먹었던 섬진강 재첩국이 기억에 남았네요. 이번 구정에는 남도 맛 기행 코스로 영광굴비 정식부터 여수 돌산 갓김치까지 배 두드리며 다녔었던 기억이 납니다. 불과 일년 반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아빠께서는 올 추석 여행을 많이 부담스러워 하십니다. 자식들의 노고와 비용을 걱정하는게 아니라 언젠가부터 아빠의 여행은 설레임이 아닌 고단함이 되어버렸나 봅니다. 한 두 시간만 이동해도 너무 피곤해 하시는 걸 옆에서도 느낄 수 있을 정도이니, 누가 그랬던가요? 효도할만하니 부모님이 안계시더라는...더 일찍 맛있는 거 좋은 거 더 많이 해드리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습니다. 이번에는 사돈댁 시어른도 같이 여행에 동참하셔서 물리지도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참여하시겠지만…이런 저런 생각에 마음이 아픕니다.
여행 계획은 제부가 전담해서 계획하는 편입니다. 그도 이제 나이 들어가서인지 아니면 어르신들의 고단함을 알아서인지 이번 여행은 힘들지 않은 코스로 최대한 안움직이고 최대한 편안한 여행을 추구하자고 합니다. 저희는 코스가 꽤 맘에 듭니다. 거제도 주변을 기점으로 최소한의 움직임을 추구하고자 숙소에 돈을 좀 썼습니다. 계획표를 보니 두 어르신들을 모시고 하는 여행인지라 최대한 배려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뚝뚝한 저희 아빠가 자상하신 사돈 어른의 반만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고 딸들이 늘 투덜거리고는 했는데… 이번 여행에서 그 실상을 뼈져리게 느끼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식들 마음 편하자고 계획한 여행에 못이기는 척 따라주시니 그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얼마나 더 여행을 계속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지만 여건이 허락될 때까지는 계속해서 강행할 예정입니다. 전국을 다 둘러볼 때까지 건강하기만 하셔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명절이라고 여기저기 인사를 차려야 할 곳도 많고 신경 써 챙겨야 하는 일들도 많습니다. 평소에 전하지 못했던 감사의 마음을 명절을 빌려 전할 수가 있어서 다행이다 싶습니다. 오고 가는 길 차 조심하시고 건강한 한가위 보내시길 바랍니다.
shnews j5900@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