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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시흥시 옛마을 이름을 찾아서】

기사승인 2024.01.26  11:5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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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군 관내도 「시흥군세일람(1936년)」.

옛 시흥군의 소래면, 군자면, 수암면이 합쳐져 1989년 1월 시로 승격할 당시 인구 9만3천여 명의 시흥시는 이후 급성장하며 2023년 1월 말 현재 인구 57만1천여 명에 이르렀다.

개발 과정에서 옛 자연마을의 상당수가 도시화로 사라졌고 정겨운 예전 마을지명도 점차 잊혀져 갔다.

이에 시흥신문은 시흥문화원이 발간한 「시흥시 지명유래」를 참고, 시흥지역의 옛마을이름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 매화동(梅花洞)

조선시대에는 인천부 전반면의 이리 매착리(梅着里)와 율동(栗洞)이었다. 1914년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인천부의 신현면‧전반면‧황등천면이 소래면으로 통합되어 부천군에 편제되면서 부천군 소래면 매화리가 되었다. 1973년 7월 1일 소래면이 시흥군에 편입되면서 시흥군 소래면 매화리로, 1980년 12월 1일 소래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시흥군 소래읍 매화리로 개칭되었다.

1989년 시흥시 출범 당시 과림동‧금이동‧도창동‧매화동‧무지동을 관할하는 행정동이었으나, ‘시흥시출장소설치조례’(시조례 제230호)에 따라 1991년 1월 15일 중림출장소가 설치되면서 과림동과 무지동이 분리되었다. 행정동의 명칭은 법정동 매화동에서 유래하였다.

= 용당뿌리‧용두머리

새텃말 옆(북쪽)으로 안현동 장낙골을 향하고 있는 산줄기 아래인데, 풍수로 보아 좌청룡에 해당된다. 용머리와 같은 형상의 언덕이다.

= 줄왕죽들

매채기 앞(남쪽) 호조벌 내에 있는 들로, 이곳에 줄이 많았는데 1970년 경지정리하면서 없어졌고 현재는 배수로만 남았다.

= 진둥고개‧진둥길

도창동 산업도로에서 용두산으로 가는 길을 말한다. 길이 낮고 길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자동차가 들어오기 전 우마차가 다니던 길이다.

= 강창리(江倉里)

도창저수지 북쪽에 위치한 마을로 조선시대 바닷물이 들어왔을 때 배에서 짐을 내려 마을에 있는 창고에 쌓았다고 해서 ‘강창리’라고 불렀고 이웃마을에서는 ‘강챙이’라고 불렀다. 안동 권씨와 파주 염씨의 오랜 세거지로 마을 서쪽 지역을 ‘건너말’, 북쪽 지역을 ‘웃말’이라 불렀다.

= 도두머리(道頭洞)

도창초등학교 서북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도로가 마을 위로 관통하였다 하여 ‘도두머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도두동은 1700년대에 이르러 밀양 박씨가 처음 세거한 이래 수원 백씨 등이 살아왔다. 예전에는 마을 서쪽 지역을 ‘아랫말’, 동쪽 지역을 ‘동쪽마을’, 마을 중앙을 ‘가운뎃말’이라 했다. 현재는 마을과 마을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호수가 늘었다.

= 점말(店村)

도창저수지와 도창초등학교 사이의 42번 국도변에 있는 마을이다. 일제 중엽에 안경수란 사람이 마을 뒤(동쪽) 산등성이에서 옹기를 구웠다고 하며 광복 직전에 사라졌다. 현재 가마터는 없어졌다.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shnews j5900@chol.com

<저작권자 © 시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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