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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시흥시 옛마을 이름을 찾아서】

기사승인 2024.02.23  11:5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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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군 관내도 「시흥군세일람(1936년)」.

옛 시흥군의 소래면, 군자면, 수암면이 합쳐져 1989년 1월 시로 승격할 당시 인구 9만3천여 명의 시흥시는 이후 급성장하며 2023년 1월 말 현재 인구 57만1천여 명에 이르렀다.

개발 과정에서 옛 자연마을의 상당수가 도시화로 사라졌고 정겨운 예전 마을지명도 점차 잊혀져 갔다.

이에 시흥신문은 시흥문화원이 발간한 「시흥시 지명유래」를 참고, 시흥지역의 옛마을이름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 매화동(梅花洞)

조선시대에는 인천부 전반면의 이리 매착리(梅着里)와 율동(栗洞)이었다. 1914년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인천부의 신현면‧전반면‧황등천면이 소래면으로 통합되어 부천군에 편제되면서 부천군 소래면 매화리가 되었다. 1973년 7월 1일 소래면이 시흥군에 편입되면서 시흥군 소래면 매화리로, 1980년 12월 1일 소래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시흥군 소래읍 매화리로 개칭되었다.

1989년 시흥시 출범 당시 과림동‧금이동‧도창동‧매화동‧무지동을 관할하는 행정동이었으나, ‘시흥시출장소설치조례’(시조례 제230호)에 따라 1991년 1월 15일 중림출장소가 설치되면서 과림동과 무지동이 분리되었다. 행정동의 명칭은 법정동 매화동에서 유래하였다.

= 뱃모레이

도두머리와 호조벌 사이에 있는 산모퉁이를 칭한다. 바닷물이 들어왔을 때 배가 정박했다고 하는데, 논일을 하다가 쉬던 곳이기도 하다.

= 어령골

점말 뒤에 있는 좁고 긴 골짜기로 도창교회에서 동쪽으로 1㎞쯤 떨어진 곳에 있다. ‘산골’ 또는 ‘구렁태’라고도 한다. 무지내동과 과리동 가는 길로 현재 군부대가 있고 농경지로 변했다.

= 은행나무재

도두머리 아랫마을에서 매화동으로 가는 길목을 말한다. 현재 도창교회가 있던 자리에 큰 은행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 장승박이

1970년대 이전 강챙이 주민들이 2년마다 한 번씩 도당굿을 지내기 위해 마을 북쪽 산에 천하대장군을, 남쪽 산에 지하여장군을 세웠는데 이 두곳을 일컬어 ‘장승박이’라고 부르고 있다.

= 주산이봉

도창초등학교 뒤(서쪽)에 있는 있는 산으로 도창동의 주산이다. 점말에서 매월 10월 길일을 택해 이 산 중턱에 터주가리를 만들어 놓고 도당제를 지낼 만큼 마을에서 중시하는 산이다.

= 찬우물

점말 마루미산 아래(남쪽)에 있는 우물이다. 물이 차고 맛이 좋아 1970년대초에 간이 상수도를 설치해 마을의 식수원으로 사용했다.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shnews j5900@chol.com

<저작권자 © 시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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