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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시흥시 옛마을 이름을 찾아서】

기사승인 2024.08.09  11: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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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군 관내도 「시흥군세일람(1936년)」.

옛 시흥군의 소래면, 군자면, 수암면이 합쳐져 1989년 1월 시로 승격할 당시 인구 9만3천여 명의 시흥시는 이후 급성장하며 2023년 1월 말 현재 인구 57만1천여 명에 이르렀다.

개발 과정에서 옛 자연마을의 상당수가 도시화로 사라졌고 정겨운 예전 마을지명도 점차 잊혀져 갔다.

이에 시흥신문은 시흥문화원이 발간한 「시흥시 지명유래」를 참고, 시흥지역의 옛마을이름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 목감동(牧甘洞)

<물왕동‧산현동‧조남동‧논곡동‧목감동>

목감동은 시흥시 중심부에서 동쪽에 위치한다. 동북쪽으로 안양시, 남쪽으로 안산시, 서쪽으로 연성동, 북쪽으로 매화동과 경계를 이룬다. 조선시대 이 지역에 ‘목암사(木岩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경내의 단감나무가 유명하였다고 한다. 절 주변에 마을이 형성되자 목암사의 ‘목’자와 단감나무의 ‘감’자를 따서 ‘목감’이라 했다는 데서 동명이 유래하였다.

【2】 산현동(山峴洞)

조선시대에는 안산군 초산면의 산현리(山峴里)와 궤곡리(樻谷里)였다가, 1912년 2월 5일 안산군의 동리 구역과 명칭을 변경할 때 산현리로 통합되었다. 1914년 3월 1일 안산군이 시흥군과 수원군으로 분리 통합될 때 시흥군에 속하게 되었고, 같은 해 3월 13일 옛 안산군의 군내면‧잉화면(인화면)‧초산면이 통합되어 수암면이 설치되면서 시흥군 수암면 산현리가 되었다. 그 뒤 법률 제4050호에 의해 시흥군 소래읍‧군자면‧수암면이 시흥시로 승격되자 시흥시 산현동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년 경) 안산군 초산면에는 산현리를 ‘뫼재’로, 궤곡리의 궤곡을 ‘살듸골’로 부른다고 기록되어 있다.

= 마하산(麻河山)‧마산(麻山)

산현동, 조남동, 화정동 및 안산시 양상동을 잇는 높이 246m 산으로 조선시대부터 기록에 자주 등장하는 산이다. 조선 전기 「동국여지승람」 안산군 산천조에 ‘마하산의 읍치(邑治)의 서쪽 5리에 있다’고 기록된 이래 조선후기 「여지도서」, 「대동지지」에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또 「경기지」(1843), 「기전읍지」(1894), 「조선지지자료」에는 ‘마하산(麻霞山)’으로 기록되었다.

구전에 따르면 멀리 삼한시대에 이 산봉우리 동굴에서 마귀할멈이 아들, 딸과 함께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동굴 입구에 큰 바위가 있어 출입에 지장을 주자 아들과 딸이 한달 동안 온 힘을 다해 밑으로 떨어뜨렸으나 기진맥진해 지쳐 죽자 마귀할멈도 이에 충격을 받아 죽었다고 한다. 그 이후부터 마귀할머니가 살았다고 해서 ‘마산’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하며 ‘천마산’이라고도 부른다.

= 삼박골

사티골에서 능골로 넘어가는 고개 왼쪽에 있는 골짜기로 바위가 서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선바위

쓰레봉 정상에 바위가 서있는 형상을 하고 있어 ‘선바위’라고 부르는데, 일명 ‘장군바위’ 또는 ‘병풍바위’라고도 한다.

= 쓰레봉

애모곡 뒤(서쪽)에 있는 봉우리로 쓰레처럼 생겼는데 풍수로 보아 천리마가 뛰는 형국이라 한다. ‘구절봉’, ‘선바위산’, ‘오절봉’ 등 이칭이 많다.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shnews j5900@chol.com

<저작권자 © 시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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