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기고】
이종근 부천시흥원예농협 조합장. |
가을바람 부니 주변에서 이구동성 하는 말이 있다. “이제야 살 것 같다.” 올여름 폭염이 얼마나 심했으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약속이나 한 듯 이 말을 내뱉을까. 선선한 가을 날씨가 나 역시 반갑기 그지없었는데 웬걸, 가을의 문턱에서 또 한 번 예기치 않은 폭우가 쏟아졌다. 남부지방이 유독 큰 피해를 입었는데, 특히 속수무책 망가진 농작물을 대하는 농민들 심정이 오죽할까 싶다.
우리 농협의 로컬푸드직매장에는 인근 100여 농가가 매일 아침 다양한 채소와 과일 등을 납품한다. 아침 7시면 소포장한 농작물을 싣고 이미 매장에 도착할 정도니 로컬농가의 하루가 얼마나 일찍 시작될지 굳이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신선한 농작물을 납품하기 위해 이른 새벽, 이슬을 밟고 수확한 후 부지런히 포장을 끝내고 달려온 농민들. 이분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신선한 농작물을 납품하는 것은 매출로도 직결되지만 ‘농민의 자존심’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생산자의 이름을 단 상품이 나란히 진열돼 있는 로컬푸드 코너에서 농민들은 경쟁도 하고 농사 정보도 교류한다. 농가에게 판로를 제공하는 것에 더해 로컬푸드직매장의 또 다른 순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로컬농가가 위치한 시흥, 부천, 광명, 안산 등지에는 대개 비닐하우스에서 농사를 짓는 분들이 많다. 날씨의 영향을 줄 일 수 있고, 긴 계절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한여름 비닐하우스에서 농사일을 하는 건 겪어보지 않고는 모를 고역이다. 가만히 있어도 더워서 못 살겠다는 말이 절로 나왔던 올여름, 유난히 길고 사나웠던 폭염을 견디며 하루도 빠짐없이 신선한 농작물을 안고 온 로컬농가에 깊은 감사와 경의를 표하고 싶다.
오늘만큼은 우리의 식탁을 조금 더 다정하고 겸허하게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그 어느 때고 농사짓기 쉬운 시절은 없었지만 지금 우리 식탁에 오른 그 채소는 폭염과 폭우를 넘어, 노심초사에 가까운 농부의 응원을 받으며 우리 곁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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