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요단상)윤민영-순복음천향교회 담임목사
겸손은 공경할 겸(謙)에 따를 손(遜)이다. 공경하여 따른다는 뜻이다. 남을 높이어 귀하게 대하고 자신을 낮추는 태도가 겸손이다. 겸손이 밖으로 표현될 때 온유라고 할 수 있다. 겸손은 마음을 낮춰 남을 나보다 낫고 존귀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겸손의 반대말은 교만이다. 잘난 체하며 다른 사람을 멸시 천대하는 것이다. 겸손과 교만의 결과는 전혀 다르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잠 18:12)’ 교만은 가장 먼저 망하고 겸손하면 존귀한 길로 인도한다.
조선 영조 때 경기도 장단의 오목이라는 동네에 이종성이라는 은퇴한 정승이 살고 있었다. 동네 이름을 따 ‘오목 이 정승’이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매일 강가에 나가 낚시를 하면서 노후를 즐기고 있었다.
어느 여름날 그가 어린 하인을 데리고 낚시를 하다 시장기를 느껴 근처 주막에 방을 잡고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 고을에 새로 부임한 사또의 행차한 곳이 정승과 같은 주막이었다. 주막에 방이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사또는 부득불 오목 이 정승이 식사하는 방으로 들어왔다.
신관 사또가 거만하게 수염을 쓸어내리면서 아랫목에 앉다 보니 문득 방구석에서 식사하는 시골 노인과 어린아이가 눈에 띄었다. 그런데 그들의 밥상을 보니 사또로서는 난생, 처음 보는 밥이었다. 호기심에 사또가 물었다. ‘여보게 늙은이, 지금 자네가 먹는 밥은 대체 뭔가?’ ‘보리밥이오.’ ‘어디 나도 한번 먹어볼 수 있겠나?’ ‘그러시지요.’ 이렇게 해서 노인이 내민 보리밥 한 숟가락을 먹어본 사또는 오만상을 찌푸리면서 뱉어내더니 소리쳤다. ‘아니, 이것이 어떻게 사람의 목구멍으로 넘어갈 음식이란 말인가?’ 사또가 노발대발하자 아전들은 냉큼 주모를 시켜 쌀밥과 고깃국을 대령했다. 그러는 사이에 노인과 아이는 조용히 밖으로 나가버렸다.
사또가 식사를 끝낼 무렵, 정승 집 하인이 사또를 찾아왔다. 자신과 비교도 되지 않는 고관 벼슬을 지낸 어른이 부르자, 사또는 부리나케 정승 집 대문간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큰절을 하고 고개를 들어보니 조금 전에 주막에서 본 그 노인이 아닌가. 비로소 사태를 깨달은 신관 사또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대감, 아까 저의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 하지만 오목 이 정승의 추상 같은 목소리가 그의 귀를 세차게 때렸다. ‘그대는 전하의 교지를 받들고 부임한 관리로서 그 책임이 막중한데도 교만한 위세를 부렸으니, 그 죄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백성들이 먹는 보리밥을 입안에 넣었다가 뱉어버리는 행위는, 도저히 목민관으로서 있을 수 없다. 그런 방자하고 사치스러운 생각으로 어찌 한 고을을 다스릴 수 있겠는가? 당장 벼슬 자리를 내어놓고 고향으로 돌아가라.’ 과거에 급제하여 청운의 뜻을 품고 장단 고을에 부임한 신관 사또는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고 낙향하는 불쌍한 신세가 되었다. 교만하면 가장 먼저 망한다.
조선시대 14대 선조는 왕이 될 수 없는 위치였다. 선조의 아버지 덕흥군은 중종의 후궁인 창빈 안씨 소생으로, 중종의 9번째 아들이다. 게다가 선조는 덕흥군의 셋째 아들이다. 그래서 서열상으로 볼 때 선조가 왕위에 오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선왕인 13대 명종에게는 하나뿐인 순회세자가 13세의 어린 나이에 요절한다. 왕위를 세울 세자가 없는 명종은 어린 조카 왕손들을 불러서 임금이 정사를 돌볼 때 쓰는 익선관을 가리키며 머리의 크고 작음을 알고 싶어서 그러니까 한 번씩 써 보거라. 했다. 모두 좋아하며 한 명씩 익선관을 썼다. 가장 나이 어린 선조의 차례에 선조는 쓰지 않고 공손히 받들어 제자리에 갖다 놓았다. 그러면서 ‘이것이 어찌 보통 사람이 함부로 쓸 수 있는 것이오리까?’ 어린아이의 입에서 그런 말에 감동된 명종은 ‘이 아이가 보통 아이가 아니구나. 선조를 후계자로 삼아야겠구나.’ 생각하면 선조를 총애하며 아끼던 중 몇 년 후, 명종이 34세 때 갑자기 세상을 떠난 후 누구를 왕으로 세워야 할 것인가에 여러 의견이 있을 때, 명종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인순왕후가 선조를 왕으로 세운다는 교서를 내렸다. 임금만이 쓸 수 있는 익선관을 자신이 어떻게 쓸 수 있겠느냐는 겸손함을 보고, 명종은 선조에게 진짜 면류관을 씌워 준 것이다. 겸손은 존귀의 길로 인도한다.
우리나라가 혼란한 시대를 지나고 있다. 이 모든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원인은 하나다. 망할 줄 모르고 교만하기 때문이다. 약간 억울한 생각이 들어도 억지로라도 겸손하면 존귀한 길이 열릴 것임을 늘 생각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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