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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는 일에 정성을 다할 뿐

기사승인 2020.05.15  16: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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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단상] 현여(법륭사 주지)

山堂靜夜坐無言 (산당정야좌무언)
寂寂寥寥本自然 (적적요요본자연) 
何事西風動林野 (하사서풍동림야)
一聲寒雁?長天 (일성한안여장천)

깊은 산속 고요한 밤에 말없이 조용히 앉아 있으니
고요하고 고요해서 텅 비워진 나와 자연 본래의 모습 그대로였다.
어찌하여 서쪽에서 바람이 불어 수풀을 흔드나니
기러기의 차가운 울음이 거칠게 하늘에 울려 퍼진다.

 

내가 거처하는 방 한쪽 벽면에 걸려 있는 글의 내용이다. 이 글귀는 부처님의 가르침의 진면목을 표현하고 있다. 한 선사(禪師)가 산속에서 조용히 참선을 하고 있으니 마음이나 몸이나 자연이나 또렷이 하나 밖에 없어 깊은 즐거움을 누리고 있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 수풀을 흔드나니 놀란 기러기 한 마리가 차가운 소리를 울리며 거칠게 날아올랐다는 선시(禪詩)이다.

예전에 송광사 강원에서 경전을 배우며 살았다.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모신 통도사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어 놓은 팔만대장경을 모시고 있는 해인사 그리고 고려시대부터 16분의 국사와 큰스님들을 계셨던 송광사를 불, 법 ,승 삼보 사찰이라고 하며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송광사는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조계산 밑에 자리 잡고 있는데 겨울이 되면 눈도 많이 내리고 무척이나 추운 지역이다. 송광사 주위를 조계산에서 내려온 물줄기가 한 바퀴 빙 돌아서 나간다. 그래서 그런지 계곡에서 나오는 차가운 바람이 추운 겨울을 더 춥게 했다.

새벽예불이 3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아무리 옷을 껴입어도 그 차가운 추위를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살적만 해도 변변한 세면시설도 없어서 이를 닦고 얼음 같은 물로 입안을 행궈 내면 잠이 번쩍 깨었다. 세수 할 때 뜨거운 물 한 바가지가 그리운 시절이었다.

그 당시 송광사에는 텔레비전도 없었다. 세속이야기를 접하면 수행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산중 어른 스님들이 절에 텔레비전을 들여놓지 못하게 했다. 그러다 보니 정치 이야기든 사회 이야기든 알지도 못하고 할 말도 없었다. 그저 묵묵히 예불하고 경전보고 공양하고 지냈다.

시흥 법륭사 은사스님과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늘 스님의 건강을 걱정하며 지냈다. 그 당시 법륭사 창건주인 은사스님은 당뇨병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신장 투석을 하며 지내고 있었다. 송광사 뒤로는 상수리나무가 많이 있었다. 도토리로 묵을 해먹으면 당뇨병에 좋다는 말을 듣고 쉬는 시간이 있으면 송광사 뒷산에 도토리를 주우러 다녔다. 승복 윗 주머니가 불룩 나올 정도로 주었지만 박스에다 넣으니 얼마 되지 않았다. 큰 박스에다 가득 채워서 보낼 생각을 했는데 주워도 주워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송광사에서 함께 수행하는 도반(친구)에게 사정을 이야기하니 선뜻 함께 도토리를 주워 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정말 수행을 하듯 열심히 줍고 또 주웠다.

어느 날 도토리를 줍고 있는데 도토리 줍는 내 손 곁으로 뱀이 지나갔다. 뱀의 눈과 나의 눈은 마주쳤다. 나는 그 순간 나만 놀란 것이 아니라 뱀 자신도 놀란 것이 느껴졌다. 서로 다른 목적으로 길을 가다가 마주쳐 놀란 것이다. 나는 '나무 아미타불’을 세 번 불러 주고 다음 생에는 좋은 몸 받기를 기도해 주었다.

깜짝 놀란 도반 스님은 내게로 왔다. 그리고 그 위험한 순간에 ‘나무 아미타불’이 되냐고 한다. 나는 서로 다른 길을 가다가 뱀의 몸으로 사람의 몸으로 만났을 뿐 다른 것이 뭐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뱀의 고통을 벗고 해탈하기를 축원해 주었다고 편안하게 말했다. 그 당시 내 마음은 은사 스님을 위해 도토리를 줍는 것만 정성을 다했기에 무척이나 고요했을 뿐 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로 세상살이가 많이 어려워졌다. 그러나 봄꽃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때가 오면 피고 진다. 자기의 시간이 돌아오면 분명히 자기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우리도 너무 놀라지 말자. 국가가 그때그때 마다 충분한 정보를 주고 코로나19 방역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진자 치료에도 많은 의사 선생님들은 정성과 최선을 다하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우리나라는 코로나19 전염 예방 우수국가로 칭찬받고 있다. 이전에도 세상에는 많은 전염병이 있었고 잘 막고 극복해 왔다.

‘산중에서 조용히 참선하고 있으니 고요하고 고요해서 나와 자연의 본래 모습 한 가지밖에 없다.’는 선시(禪詩)와 같이, 송광사에서 지낼 때와 같이, 세상일에 너무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내가 하는 일에 더 정성을 드리며 묵묵히 불교인의 길, 스님의 길을 걸어가야겠다.

shnews j5900@chol.com

<저작권자 © 시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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