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잊혀진 시흥시 옛마을 이름을 찾아서】

기사승인 2024.03.29  11:55:50

공유
default_news_ad2
시흥군 관내도 「시흥군세일람(1936년)」.

옛 시흥군의 소래면, 군자면, 수암면이 합쳐져 1989년 1월 시로 승격할 당시 인구 9만3천여 명의 시흥시는 이후 급성장하며 2023년 1월 말 현재 인구 57만1천여 명에 이르렀다.

개발 과정에서 옛 자연마을의 상당수가 도시화로 사라졌고 정겨운 예전 마을지명도 점차 잊혀져 갔다.

이에 시흥신문은 시흥문화원이 발간한 「시흥시 지명유래」를 참고, 시흥지역의 옛마을이름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 금이동(錦李洞)

조선시대에는 인천부 전반면의 삼리 도두리(道頭里)‧강창리(江倉里)였는데, 1914년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전반면이 신현면‧황등천면과 함께 소래면으로 편제되어 신설된 부천군에 속하게 됨에 따라 부천군 소래면 도창리가 되었다.

1973년 7월 1일 소래면의 시흥군 편입으로 시흥군 소래면 도창리가 되었고, 1980년 12월 1일 소래면이 읍으로 승격하면서 시흥군 소래읍 도창리가 되었다가, 1989년 시흥시의 승격으로 시흥시 도창동으로 자리잡았다. 행정동은 매화동으로 ‘금이’는 거멀(검월리)에 있는 금월산의 ‘금’(錦)자와 도리재의 ‘이’(李)자를 따서 지은 지명이다.

= 능너머‧능째

도리재 웃말 서쪽으로 운흥산 줄기이다. 예전에 왕이 행차하였던 고개라고도 하며,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조선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顯德王后. 1418~1444)의 묘를 이곳에다 쓰려다가 터가 좁아 인근 안산시 목내동 능안으로 옮겼다고 한다. 일명 ‘능째’라고도 한다.

= 도당산

거멀산 남쪽에 있는 산으로 산 밑에 도당나무(소나무)가 있어 거멀 사람들이 2년마다 짝수 해에 한 번씩 당제를 지냈다.

= 도당산 우물

거멀 사람들이 2년 마다 지낸 당제에 사용하던 우물이다.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은 마을에서 영향력이 있고, 깨끗한 사람이어야 하며 부정을 막기 위해 제관은 제사를 지내기 전에 이 우물에서 몸을 씻었다.

shnews j5900@chol.com

<저작권자 © 시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ide_ad4
default_nd_ad6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