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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시흥시 옛마을 이름을 찾아서】

기사승인 2024.04.12  10:2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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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군 관내도 「시흥군세일람(1936년)」.

옛 시흥군의 소래면, 군자면, 수암면이 합쳐져 1989년 1월 시로 승격할 당시 인구 9만3천여 명의 시흥시는 이후 급성장하며 2023년 1월 말 현재 인구 57만1천여 명에 이르렀다.

개발 과정에서 옛 자연마을의 상당수가 도시화로 사라졌고 정겨운 예전 마을지명도 점차 잊혀져 갔다.

이에 시흥신문은 시흥문화원이 발간한 「시흥시 지명유래」를 참고, 시흥지역의 옛마을이름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 금이동(錦李洞)

조선시대에는 인천부 전반면의 삼리 도두리(道頭里)‧강창리(江倉里)였는데, 1914년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전반면이 신현면‧황등천면과 함께 소래면으로 편제되어 신설된 부천군에 속하게 됨에 따라 부천군 소래면 도창리가 되었다.

1973년 7월 1일 소래면의 시흥군 편입으로 시흥군 소래면 도창리가 되었고, 1980년 12월 1일 소래면이 읍으로 승격하면서 시흥군 소래읍 도창리가 되었다가, 1989년 시흥시의 승격으로 시흥시 도창동으로 자리잡았다. 행정동은 매화동으로 ‘금이’는 거멀(검월리)에 있는 금월산의 ‘금’(錦)자와 도리재의 ‘이’(李)자를 따서 지은 지명이다.

= 동막골

금이2동에 있는 운흥산 북쪽으로 도리재 동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이곳에 조선시대 절충장군 신용(申鎔)과 용양위부사관 신사봉(申思奉)의 묘가 있다.

= 동구미논‧둥구미논

거말 웃말 남쪽에 있다.예전에 벼를 수확할 때 동구미(메꾸리)를 둘어메고 이삭만 훑어다고 한다. 논에서 수확한 벼를 타작하면 동구미 몇 개 밖에 안 나올 정도로 수확량이 적었던 논이라고 한다.

= 뒷고래실들

도리재 솔개고개와 방죽말 사이의 길에서 동쪽에 있는 들이다.

= 뒷골

도리재 장착골고개 뒤(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이곳 큰바위 잎에서 무녀(巫女)들이 가끔 치성을 드리곤 했다.

shnews j5900@chol.com

<저작권자 © 시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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