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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시흥시 옛마을 이름을 찾아서】

기사승인 2024.05.10  13:2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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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군 관내도 「시흥군세일람(1936년)」.

옛 시흥군의 소래면, 군자면, 수암면이 합쳐져 1989년 1월 시로 승격할 당시 인구 9만3천여 명의 시흥시는 이후 급성장하며 2023년 1월 말 현재 인구 57만1천여 명에 이르렀다.

개발 과정에서 옛 자연마을의 상당수가 도시화로 사라졌고 정겨운 예전 마을지명도 점차 잊혀져 갔다.

이에 시흥신문은 시흥문화원이 발간한 「시흥시 지명유래」를 참고, 시흥지역의 옛마을이름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 금이동(錦李洞)

조선시대에는 인천부 전반면의 삼리 도두리(道頭里)‧강창리(江倉里)였는데, 1914년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전반면이 신현면‧황등천면과 함께 소래면으로 편제되어 신설된 부천군에 속하게 됨에 따라 부천군 소래면 도창리가 되었다.

1973년 7월 1일 소래면의 시흥군 편입으로 시흥군 소래면 도창리가 되었고, 1980년 12월 1일 소래면이 읍으로 승격하면서 시흥군 소래읍 도창리가 되었다가, 1989년 시흥시의 승격으로 시흥시 도창동으로 자리잡았다. 행정동은 매화동으로 ‘금이’는 거멀(검월리)에 있는 금월산의 ‘금’(錦)자와 도리재의 ‘이’(李)자를 따서 지은 지명이다.

= 불당골

방북말 주막거리에서 무지내동으로 넘어가는 골짜기이다. 조선 말엽에 절이 있던 곳이다.

= 삿갓배미

쑥고개 모덩골 안에 있는 다랑치논으로 삿갓에 비유할 만큼 작은 논이다.

= 섬배미

섬처럼 생긴 700평 가량의 큰 논으로 진말과 적막골 사이에 있다.

= 소라터

도리재 장착골고개에서 동북쪽으로 약 150m 지점이다. 소라는 본래 ‘솟대’라 하여 다음 해의 풍년을 바라는 뜻으로 볍씨를 주머니에 넣어 높이 달아매는 장대를 말한다. 이곳에 소라가 있었다고는 하나 자세히는 알수 없다.

= 솔개고개

방죽말과 도리재 사이에 있는 고개로 이곳에서 동쪽으로 가면 쑥고개와 논곡동에 이른다. 이곳의 풍수가 솔개혈에 해당된다고 한다. 고개마루에 도리재 출신 신명균(申明均, 1881년생)이 일제초 아카시아나무를 심었는데 조금 자라자 마을사람들이 돌을 던져서넝나무가 되었다. 1980년에 길이 포장되었다.

= 송진논

수인산업도로에서 거멀로 가는 초입에 있는 논으로 토양이 찰져서 송진같이 끈끈하다.

= 수렁논

송진논 위로 절골 서쪽에 있는 논이다. 수렁으로 샘이 잘 나와 아무리 가물어도 모를 낼 수 있었다.

= 숲살막

도리재 마을 중앙에 느티나무 5그루가 있던 곳을 말한다. 조선시대 마을사람들이 이곳에 나무를 심어야 마을에 재난과 병고가 없다고 해서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shnews j5900@chol.com

<저작권자 © 시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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