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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시흥시 옛마을 이름을 찾아서】

기사승인 2024.08.16  11:2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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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시흥군 관내도 「시흥군세일람(1936년)」.>

옛 시흥군의 소래면, 군자면, 수암면이 합쳐져 1989년 1월 시로 승격할 당시 인구 9만3천여 명의 시흥시는 이후 급성장하며 2023년 1월 말 현재 인구 57만1천여 명에 이르렀다.

개발 과정에서 옛 자연마을의 상당수가 도시화로 사라졌고 정겨운 예전 마을지명도 점차 잊혀져 갔다.

이에 시흥신문은 시흥문화원이 발간한 「시흥시 지명유래」를 참고, 시흥지역의 옛마을이름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 목감동(牧甘洞)

<물왕동‧산현동‧조남동‧논곡동‧목감동>

목감동은 시흥시 중심부에서 동쪽에 위치한다. 동북쪽으로 안양시, 남쪽으로 안산시, 서쪽으로 연성동, 북쪽으로 매화동과 경계를 이룬다. 조선시대 이 지역에 ‘목암사(木岩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경내의 단감나무가 유명하였다고 한다. 절 주변에 마을이 형성되자 목암사의 ‘목’자와 단감나무의 ‘감’자를 따서 ‘목감’이라 했다는 데서 동명이 유래하였다.

【2】 산현동(山峴洞)

조선시대에는 안산군 초산면의 산현리(山峴里)와 궤곡리(樻谷里)였다가, 1912년 2월 5일 안산군의 동리 구역과 명칭을 변경할 때 산현리로 통합되었다. 1914년 3월 1일 안산군이 시흥군과 수원군으로 분리 통합될 때 시흥군에 속하게 되었고, 같은 해 3월 13일 옛 안산군의 군내면‧잉화면(인화면)‧초산면이 통합되어 수암면이 설치되면서 시흥군 수암면 산현리가 되었다. 그 뒤 법률 제4050호에 의해 시흥군 소래읍‧군자면‧수암면이 시흥시로 승격되자 시흥시 산현동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년 경) 안산군 초산면에는 산현리를 ‘뫼재’로, 궤곡리의 궤곡을 ‘살듸골’로 부른다고 기록되어 있다.

= 안장바위

깨꼴 동쪽 산 정상에 있는 바위를 말한다. 이곳에 조선 숙종 때 우의정의 지낸 윤지완(1635~1718)의 묘를 썼는데, 이 묘자리가 풍수로 보아 사람이 말을 타고 물을 건너는 형국이었다.

묘를 쓴 이후 왠일인 지 서행에서 임금에게 진상하는 조기가 잡히질 않아 어부들이 상소를 올려 결국에는 묘를 개선 천리산으로 이장했다고 한다.안장바위는 기마도수형국 옆에 있는 바위란 뜻으로 이름 붙여진 것이다.

= 애모골(愛母谷)

묘재 서편에 있는 골짜기로 어머니가 사랑하는 아이를 안고 있는 형국으로 ‘왜무골’이라고도 칭하기도 하며 조선말엽에 이곳에서 질그릇을 굽던 곳이라 하여 ‘점촌(店村)’이라 부르기도 한다.

= 영평골

깨꼴 서쪽에 있다. 이곳에 조선 성종의 11번째 딸인 정숙옹주와 부군인 영평위(鈴平尉) 윤섭(尹燮)의 묘가 있어 ‘영평골’이라 불렀다.

= 오자봉

마산의 서맥으로 봉우리가 5개이므로 ‘오자봉’이라 부른다. 또한 이를 일명 ‘쓰레봉’이라고도 한다.

= 작은 호통골

큰호통골 옆(동쪽)에 있으며 골짜기의 통이 짧고 작아 ‘작은 호통골’이라 부른다.

= 큰 호통골

마산과 애모곡 사이에 있으며 통이 큰 골짜기라 하여 ‘큰 호통골’이라 부른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shnews j5900@chol.com

<저작권자 © 시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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