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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농부의 가을

기사승인 2024.10.11  15: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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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단상)박혜성  교수-숙명여자대학교 정책학박사

꺽이지 않을 것만 같던 더위도 이제는 한풀 꺾여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함마저 느껴진다. 
지난 주 시골에 갔다가 홍시를 세 박스나 가져다가 지인들과 나눠먹었는데, 감나무에 대롱대롱 메달려 익어가는 감을 바라만 봐야 하는 농부는 그저 속이 타들어가는 모양이다. 

조금만 가져간다고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도 기어이 세 박스를 꾹꾹 겹쳐 담아 뭉개지고 깨지고… 아무것도 못하고 떨어지는 감을 바라만 봐야 하는 농부 마음을 생각해서 깨진 걸 버리지도 못하고 먹고 있는 중이다. 내년에는 사람이라도 사서 곶감을 만들어야 하나 잠깐 고민을 하게 된다. 

몇 년 전부터 기력이 떨어져서 농사는 꿈도 못 꾸시고 앞마당 텃밭에 고추, 상추, 들깨, 부추 등등 소소하게 몇 가지만 키우는 것에도 왜 그리 정성을 들이는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식같은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는 것은 천성이 농부라서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정성을 들이는 텃밭이 얼마나 각이 딱 잡혀있는지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어릴 적부터 있던 딸기나무가 지금도 있다는 걸 올 봄에 처음 알았다. 어렸을 때 딸기가 익길 바라며 얼마나 자랐을까? 언제 따먹을 수 있을까? 기대하는 딸에게 탐스런 딸기를 안겨주지는 못할망정 농사에 걸리적거린다고 홀라당 뒤집어 버리곤 하시더니…

올해는 이 나이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빠가 정성스레 가꾼 딸기 맛을 다 봤지 뭔가. 그때는 사느라고 바빠서 그런 걸 챙겨봐 줄 여유도 없었던가보다 싶어 이해가 가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때는 많이 야속했었다. 이제사, 지난 온 날들을 되돌아보면 모든 게 후회뿐이라던 말씀이 또 이해가 안 가는 바도 아닌데 마음도 여유롭고 시간도 여유로워졌는데 늙어서 서러운 건 또 뭐란 말인가.

해마다 새로운 병들이 추가되고 있고, 관절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다고 하신다. 얼마 전 진단받은 심장병에는 진통제를 먹으면 약효가 떨어진다고 귀에 못이 박히게 얘기를 했는데도 참기가 힘드신 모양이다. 꽤 자주 읍내 병원에 가서 진통 주사를 맞고 진통제가 잔뜩 들어있는 약도 매번 처방받아 떨어뜨리지 않으신다. 오죽하면 병원에서는 만성이 돼서 주사 효과가 떨어지는 거라고 했겠는가? 

내 기억에 젊으셨을 때는 아픈 것도 너무 참아서 속상하다고 엄마가 투덜거리시곤 했었는데… 나이가 들어서 더 아픈 것일까? 할 일이 없어서 더 아픈 것일까? 나이 때문이라고 해도 서럽고, 할 일이 없어서라는 것도 서럽긴 매한가지다. 

가을이라 그런지 저녁 무렵에는 쓸쓸함까지 더해져 안그래도 횡한 마음 덩그러이 뒹그는 낙엽같은데… 보일러를 지피고 따뜻한 옷을 입는다고 해결될 쓸쓸함이겠는가? 늙은 농부의 이번 가을은 더 깊은 그리움과 회환의 날들이 되겠구나 싶어서 마음이 아팠다. 50대가 느끼는 가을과 80대가 느끼는 가을이 어찌 같을 수가 있겠는가? 늙은 농부의 가을이 걱정되는 마음은 딸이라서 일까? 아니면 앞으로 내가 겪을 일들에 대한 걱정에서일까?  이런 저런 생각에 쓸쓸함은 더해져만 간다.

시흥신문 webmaster@n676.ndsoftnews.com

<저작권자 © 시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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